중학생들이 알몸 졸업식 뒤풀이를 했다고 해서 논란이다. 언론은 치기어린 학생들의 '지나친 뒤풀이 행태'가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고 보도한다. '알몸 뒤풀이'에 대한 도덕적 판단도 가세한다. '부도덕하다'는 것이다. 선량한 시민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이유다. 하지만 '지나치다'고 말하는 것과 '부도덕하다'고 말하는 일은 층위가 다르다. '지나치다'는 말은 '굳이 이럴 필요까지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도덕하다'는 말은 '나쁘다'는 것이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한국사회의 도덕적 엄숙주의가 또 발동한다. 왜? 그들이 옷을 벗었기 때문이다.

  '알몸뒤풀이'는 분명 뉴스거리다. '거리'는 공적 영역이다. 공적 영역을 이동하는 사람들은 옷을 착용해야만 한다. 이는 사회적 묵계다. 졸업식을 끝낸 학생들이 거리와 하천과 골목으로 뛰쳐나와 옷을 벗었다. 지역과 학교에 따라 다르지만 옷을 벗는 데 그치지 않았다. 옷을 모두 벗은 채 알몸으로 하천을 건너기도 했고, 밀가루와 계란범벅이 되어 모여 서거나 앉기도 했다. 몸을 가리는 외피, 의복을 착용해야 하는 공적 영역인 거리에서 이같은 일을 감행했으니 뉴스거리가 될 만하다. MBC는 '어이없다'고 보도했다. 확실히, 어이가 있는 일은 아니다. 이 새로운 뒤풀이의 양식을 감상한 주민들의 소감이 따라붙는다. '말세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패턴이라고 볼 수 있다. 일상에서는 좀처럼 목격하기 힘든 일이 발생했으니 뉴스가 될 법하다. 뉴스가 될 만큼 충격적인 일을 목도했으니 '말세다'라고 할 만하다. 그런데 '부도덕하다'는 또 무엇인가? 도대체 무엇이 부도덕하다는 것인가? '불쾌'할수는 있다. 옷을 벗은 학생들의 몸이 자신의 미적취향에 부합하지 않았다든가, 옷을 벗은 학생에게서 혹시 고약한 냄새가 났다든가, 학생들이 뿌리는 밀가루와 계란이 튀어 옷이 더러워졌다든가 하는 이유로 충분히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 풍기문란이 경범죄로서 법적심급의 기준이 되는 까닭도 타인의 '불쾌감', '혐오감'에 의존한다.


  그러나 한국사회가 중학생들에게 느끼는 감정은 쾌의 유무로 판단할 수 있는 '불쾌감'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자신들을 지탱하는 도덕적 엄숙주의가 파괴될까 우려하는 위기의식이다. 중학생들에 대한 '도덕적' 판단 역시 이 위기의식에서 나온다. 옷을 벗었기 때문이다. 정숙하고 단정해야 할 '학생'들이 백주대낮 도심 한복판에서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채 '참람한' 행위를 벌였기 때문이다. 도덕적 엄숙주의는 언제나 성적 금기와 결탁한다. '남학생들 뿐 아니라 여학생들도 옷을 벗었다'는 기사는 성적 금기를 넘어선 학생들에 대한 도덕적 엄숙주의의 위기감을 드러낸다. '여학생들까지 저러니 말세다'라는 누리꾼들의 반응도 같은 선상에 있다.


  이 사건은 한국사회의 학생들에게 요구되는 '정숙함'이라는 표준가치가 깨져버렸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이다. '청소년 비행'은 언제나 있어왔다. 음주와 흡연과 '불건전한 이성교제'는 그러나, 언제나 의복을 입고 행해졌다는 점에서 비행의 고전(古典)이었다. 그러나 여기, 새로운 '비행의 계보'의 등장에 한국사회는 당황한다. 저들이 기어이 옷을 벗었다. 남녀 가리지 않고 옷을 벗었다. 안 되겠다. 일단 때리고 보자. 이런 심리다. 학생은 학생다워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고, 학생다움은 언제나 건전해야 한다는 보편준칙이 있기 때문이다. 복장을 규제하고 두발을 규제한다. 교도소에서 재소자들에게 그러하듯, 똑같은 옷을 입히고 머리를 '스포츠형 3센티', '귀밑 5센티'로 제한한다. 그러나, '학생다워야 한다'는 정언명제 아래에는 통제의 수월성을 꾀하는 파시즘의 음험한 망령이 있다.


  졸업식이 '학창시절의 추억을 마무리하는 아름다운 자리'가 되어야 한다고? 글쎄, <천사들의 합창>이라면 또 모를까. 대한민국에서 학창시절의 추억이라고는 억압의 상처밖에는 없지 않을까. 스승의 몽둥이가 하늘을 가르고, 학주의 가위가 머리를 질주하며, 성적에 따라 사람의 등급을 매기는 중학교 고등학교의 졸업식이 아름답고 건전하고 바르기를 기대하는 건 무리다. 시인 유하가 말했듯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매맞고 침묵하는 법'과 '시기와 질투를 키우는 법'과 '상상력을 최대한 굴복시키는 법'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학생들의 졸업식 뒤풀이가 '아름답고 건전하기'를 바라지 말라. 역설적으로, 그들은 건강하다. 자극에 반응한다는 것은, 건강하다는 말이다. 건강하기에 받은 그대로의 억압을 단 하루의 광폭한 뒤풀이로 씻어냈다. 오히려 아무 말 없이 양순하게 졸업식을 끝낸 학생들이 비정상이다. 숱한 억압과 상처에 길들여지고 익숙해졌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억압과 상처를 받고도 말없던 그들이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진학해 사회로 나왔을 때가 나는 더 무섭다. 알몸의 학생들은 '백주대낮의 거리'에서 억압의 분노를 표출했지만, 그들은 먼 훗날 어느 남모를 밀실에서 무엇을 하며 그것을 씻어낼 것이란 말인가.


  그들의 행동을 잘했다고 칭찬하거나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렇다고 뒤풀이의 병리성을 학생들에게서 찾는 일도 오류다. 그들에게는 잘못이 없다. 그들의 뒤풀이가 충격적일수록, 그들을 억압하는 대한민국 입시교육이 얼마나 잔혹한지 반증할 뿐이다. 선배 학생들은 밀가루 범벅이 되어 교복을 찢으면 되었지만, 이제 이들은 그 찢긴 교복마저도 걸쳐 입기가 힘겨운 것이다.

http://bloggernews.media.daum.net/news/795256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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